쓰레기 너머 어르신의 마음까지 살핀 영암 지역사회

영암군 솔루션회의, 도포면 한 마을 위기가정서 쓰레기 10톤 수거

윤규진 기자 kor741@hanmail.net
2024년 05월 07일(화) 11:51
쓰레기 너머 어르신의 마음까지 살핀 영암 지역사회
[한국저널뉴스]남들은 쓰레기라고 했지만, 어르신은 아까웠다.

여기저기서 주워 온 고철은 언제든 돈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버려진 물건들도 조금만 손보면 쓸 수 있을 듯했다.

남편과 그렇게 6년 넘게 꼬박꼬박 모은 것들은 영암군 도포면 한 마을의 집 안쪽 마당과 바깥 비닐하우스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남편과 사별한 뒤부터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어르신은 더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쌓인 물건들은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3월초 도포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어르신 집안에 쌓인 7톤가량의 생활폐기물을 치웠다.

봄이 되고 날이 풀리자, 이번에는 집 밖 비닐하우스의 쓰레기가 골칫거리였다.

오랜 시간 쌓인 물건들은 심한 냄새로 마을주민의 민원이 됐다.

3월 26일 이경자 영암군생활개선엽합회장은, 영암군이 운영하는 소통폰에 이런 상황을 알렸다.

다음날인 27일 영암군은 어르신 가정을 찾아 정확한 상황 파악에 나섰다.

이어진 4월 3일 군청에서 지역아동센터, 영암군가족센터와 통합사례관리 회의를 열고, 어르신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

어지럽게 쌓인 쓰레기보다 77세 어르신의 건강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20여 년 전 발병한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했고, 치아가 거의 없어 식사도 어려웠다.

하루 한 차례 마을경로당에서 끼니를 해결했지만, 술을 주식으로 살았다.

경로당 마을주민들이 음주를 막자, 어르신은 집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끼니도 거른 채 술을 마시기 일쑤였다.

영암군은 어르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고난도통합사례관리’ 대상에 등록했다.

인천에 사는 어르신의 셋째 아들에게도 상황을 알렸다.

경제·돌봄·주거 분야로 나눠 어르신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해 긴급 개입에 나섰다.

먼저, 영암군 민세영 통합사례관리사는 어르신에게 쓰레기를 치우자고 제안했다.

인천 아들의 말에도 꼼짝하지 않던 어르신은, 민 관리사의 끈질긴 설득에 ‘고철은 분류해 판매한다’는 단서를 달아 쓰레기 수거에 동의했다.

민 관리사는 설득과 동시에 어르신의 건강 관리도 병행했다.

어르신은 500만원이 넘는 치료비, 영양 상태 불량 등으로 치과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다.

두 차례 병원 치료를 거부하던 어르신은 마음을 열었다.

민 관리사와 함께 병원에 방문해 뇌경색약을 처방받고, 치과 진료도 받기 시작했다.

어르신의 동의가 떨어지자, 영암군은 4월 17일 군청에서 지역사회 민·관 단체 8곳이 참여하는 협력 솔루션회의를 열었다.

HD현대삼호 봉사동호회 ‘한울타리’, 광주보호관찰소 목포지소, 도포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회의 참여단체들은, 26일부터 27일까지로 날을 잡아 비닐하우스를 걷어내고, 쓰레기를 치우기로 했다.

26일 광주보호관찰소 목포지소 직원들이 비닐하우스를 걷어내자, 27일 한울타리 봉사회원들과 공직자들은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에서는 모피, 가죽, 고철 등 톤백 16개, 10톤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인천에 사는 어르신의 아들 김형철(50, 가명) 씨는, 날이 더웠던 27일 새벽부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어머니의 집을 치웠다.

자원봉사자들의 점심시간, 함께 밥을 뜨자는 자원봉사자들의 권유를 김 씨는 한사코 거부했다.

그동안 어머니를 잘 돌보지 못한 자책감으로 밥을 넘길 수 없다는 말만 대신 되풀이할 뿐이었다.

김 씨는 “마땅히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을 이렇게 자원봉사자들이 해줘서 고맙다. 앞으로 영암군에 이런 활동이 있으면 꼭 알려달라. 언제든지 달려와 고마움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쓰레기 수거에 이어 도포면 우리동네복지기동대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던 어르신 집에 온수기와 싱크대를 설치했다.

도포면 부녀회는 부엌 청소와 집안정리를 도맡아 어르신의 편리한 생활을 도왔다.

영암군은 쓰레기 수거에 이어 어르신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 민간복지재단과 연결해 치과 치료비, 틀니 비용 등을 마련하고 있다.

나아가 어르신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의식주 현물지원도 연결 중이다.

특히, 영암읍 천미경 씨는 곧바로 어르신에게 밑반찬을 지원을 약속했다.

어르신이 처한 복합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민간단체의 참여와 함께 영암군 각 부서의 협업도 빛났다.

안전한 쓰레기 수거를 위해 영암군보건소 감염병관리팀은 방역을, 도포면 맞춤형복지팀은 지역사회의 참여를 중개하고 자원봉사에도 함께 했다.

4월 17일 민·관 솔루션회의가 끝나고 나서, 영암군은 관련 부서 협업회의를 따로 열었다.

솔루션 주무팀인 희망복지팀과 회의 테이블에 함께 한 환경시설미화팀은, 비닐하우스 제거와 쓰레기 수거에 필요한 지게차·포클레인을 대고, 처리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덕분에 자원봉사자들의 당일 작업은 수월했다.

영암군 관계자는 “위기에 처한 어르신을 위해 지역사회 민·관이 힘을 합치고, 부서 칸막이를 넘어선 영암군 공직자 협업회의가 어우러지며 문제를 풀었다. 솔루션회의 등으로 상부상조하던 옛 마을공동체의 모습을 재현해 준 모든 참여자에게 감사드린다.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더 체계적이고, 더 촘촘한 ‘영암형 복지 지원체계’를 구축해 내겠다”고 밝혔다.

영암군은 주 1회 내부사례회의로 중점 사례관리대상자의 선정·모니터링·종결을 결정하고, 월 1회 통합사례회의로 읍·면 사례관리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복합문제 중점사례관리대상자가 발견될 경우, 지역사회 민·관이 함께 솔루션회의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영암형 복지 지원체계를 정착해 나가고 있다.
윤규진 기자 kor7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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