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가내포봉수’는 고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신증흥양지(1758) 등 조선시대 지리지에서 확인된다.
고흥군 봉수망은 지방에서 유일하게 자체적으로 운영된 봉수망이라는 내용이 조선 중기 지리지에 수록되어 있다.
그중 가내포봉수는 16세기(1502년경) 설봉되어 18세기(1758 이전)에 폐봉됐으며, 봉수 신호는 서쪽의 도화면 가화봉수, 동쪽의 동일면 소포봉수로 연결된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그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연산군일기(1497)와 승정원일기(1636)를 참고해 봉수를 만든 이유와 운영 시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13~15세기 자주 출몰했던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인근 풍양면에 위치한 율현보성과 함께 봉수의 하나인 요망유적(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피거나 신호를 보내는 유적) 6개소가 함께 만들어졌다.
조사단은 문헌 기록을 토대로 가내포봉수가 이 6개소 중 하나였으며, 고흥반도 남쪽 해안을 감시하는 요망유적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가내포봉수에서는 요망대와 방호벽이 확인됐다. 특히 요망대는 방형의 평면 형태와 ‘凹’ 자의 단면 구조를 보이고 있다.
요망대는 자연 암반 위에 지대석(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을 설치하고 그 위에 석재를 쌓는 방식으로 축조됐다.
이러한 축조기법은 조선시대 전기 축성법으로, 도화면 가화봉수 및 망산봉수와 유사하다.
출토 유물로는 요망대 내에서 분청사기와 백자, 옹기편 들이 확인됐다.
특히 이곳에서 확인된 분청사기는 덤벙 기법이 확인됐는데, 이는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에서 자주 나타나는 기법으로 봉수 설립 시기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가내포봉수 조사를 맡은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 최인선 조사단장은 “고흥군 내 27개소 봉수유적에 대해 시굴조사를 넘어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해 조선시대 고흥만의 통신시설망 규명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박범 공주대학교 사학과 교수와 홍성우 경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부장은 “가내포봉수를 포함한 고흥의 봉수·요망유적들은 타 지역에서 확인되지 않는 고흥만의 봉수 방어 체계를 보여주며, 관련 문헌과 민속자료에 대한 기초조사도 병행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군 관계자는 “지속적인 관방유적 연구와 보존 및 활용 방안을 마련해 유적의 학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향후 학술연구를 통해 학계와의 교류를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규진 기자 kor74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