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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에는 마로산성, 불암산성, 봉암산성 등 백제시대에 축성된 석성(石城)과 고려시대의 토성(土城)인 중흥산성 등 유서 깊은 4대 산성이 있다.
마로산성(사적 제492호)은 광양읍 북쪽 해발 208.9m 마로산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말안장처럼 가장자리가 높고 중심부가 낮은 마안봉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성벽, 망루, 건물지, 우물터, 집수정 등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또한 산성 내에서는 마로(馬老), 관(官), 군역관(軍易官) 등의 글씨가 새겨진 수키와와 토기 등이 출토됐다.
불암산성(도지정기념물 제177호)은 비촌마을 불암산 남서쪽 해발 231.5m의 봉우리를 긴 사다리꼴로 테를 두르듯 둘러쌓은 협축식 석성으로, 호남읍지(1895), 광양읍지(1925) 등에 ‘현 동쪽 50리에 있는 성으로 500척이며 성내에 우물이 1개 있다’는 기록이 있다.
산성은 지난 1998년 순천대박물관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600년 무렵 축조된 백제시대 산성으로 확인됐으며 문지(門地), 건물터, 우물 등이 발굴됐다.
또한 기와류(격자문, 무문, 승문, 선문), 토기, 어망추, 석환 등도 출토됐다.
오랜 역사를 지닌 불암산성 한편에는 고졸한 벤치가 놓여 있어 수려한 억불봉과 맑은 수어호의 풍광에 빠져 고즈넉하게 ‘산멍’, ‘물멍’ 등을 즐길 수 있다.
진월면 신아리 해발 170m 고지에 자리한 봉암산성(문화재자료 제263호)은 둘레 약 100m, 외벽 높이 90cm 소형 산성으로 ‘신아리 보루’로 불린다.
산성의 이름인 봉암(蜂巖)은 벌들이 모여 있는 형국에서 유래했으며, 산 정상을 호랑이 얼굴, 섬진강으로 내리뻗은 바위들을 발톱으로 보아 ‘호암’으로 부르기도 한다.
남쪽 일부는 허물어졌지만 대체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적의 동태를 살피기 좋은 위치에 구축된 요새인 만큼 섬진강, 하동군, 진월면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을 자랑한다.
중흥산성(전라남도 기념물 제178호)은 6개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을 활용해 4km를 돌아가며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고려시대 축성된 광양 유일의 토성이다.
중흥산성 내에는 삼층석탑(보물 제11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라남도유형문화유산 제142호) 등을 품고 있는 중흥사가 있으며 사찰의 이름도 중흥산성에서 비롯됐다.
빼어난 조형미가 걸작인 국보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도 중흥산성 내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반출 후 숱한 이건 끝에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광양시는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는 기치 아래 '국보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제자리 찾기'를 고향사랑기부제 제 1호 기금사업으로 선정하고 환수를 위한 총력을 다하고 있다.
김미란 광양시 관광과장은 “산성은 적을 방어하기 좋고,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기 유리한 군사·행정 요충지에 주로 축조됐다. 막대한 인력, 비용,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산성이 4개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광양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로 산 정상부에 축조돼 적을 감시하고 방어하는 데 활용됐던 산성은 축성 시기의 건축과 토목 기술력, 사회문화상을 엿보기에 훌륭한 역사유적이자 풍광을 조망하고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훌륭한 사색 공간”이라며 “신록이 돋아나는 싱그런 4월에는 광양 4대 산성을 방문해, 일상에 지친 몸을 재충전하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규진 기자 kor741@hanmail.net